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용(李萬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5989
  • 전몰일자 : 19510204

공훈사항

이만용 일병은 경기도 인천시(現 인천광역시 중구) 선린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 중인 1950년 10월 중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만용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북진을 계속하던 유엔군과 국군은 중공군의 두 차례에 걸친 기습공격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0년 12월 2일 잔적의 거점인 춘천을 목표로 공격하여 임무를 달성하고 북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화천 부근의 잔적을 소탕했다.
그 후 사단은 상급부대 명에 의거 전방지역으로 투입되면서 12월 5일경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 배치되어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사단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25연대와 교도대대로서 춘천 북방 촛대봉-봉덕산-가덕산을 잇는 선에서 저지선을 설치했다. 북한군 제29연대는 화천으로 이동하여 집결 중이었다. 이러한 북한군은 중공군의 남하에 힘을 얻어 교착상태의 전투가 지속되었다. 사단은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당시 이만용 일병이 소속된 제36연대는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 그리고 제27연대는 청평 동쪽의 호명산 일대에 배치시키고, 제35연대는 사단 예비로서 북한강 서쪽의 송암리 일대에 배치시켜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개시하여 사단의 후방을 차단했다. 1월 2일 밤에는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그러나 제5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군 제10사단 병력들이 제천-단양-안동까지 후방 침투하여 사단은 문막 일대에서 제천-영월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를 전환했다. 이와 같이 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했다. 이만용 일병은 2월 4일 횡성 부근 진지에서 홍천 포위공격을 준비하던 중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용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9판-8면-14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ㅇ-021)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