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오(李萬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101296
  • 전몰일자 : 19521023

공훈사항

이만오 일등중사는 강원도 홍천군 내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등중사는 1950년 8월말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9월 14일까지 동해안 축선의 포항, 형산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뺏고 뺏기는 공방전 끝에 적의 공격을 물리쳤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연대는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연대는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한 후 함경남도 백암까지 북진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사단은 12월 20일경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후 연대는 1951년 4월까지 영월, 평창, 횡성,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적과 공방전을 펼쳤다.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 때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5월 말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연대는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했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구군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9월 28일 중공군 제203사단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에 공격을 가해왔고, 연대는 10월 2일까지 백병전을 펼친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이후 연대는 위력수색과 매복, 교란작전을 지속했다. 이 일등중사는 10월 23일 소대원을 이끌고 적진 교란작전 중에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오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0329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23판-4면-125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8-ㄱ-07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