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영(이만영)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1700453
  • 전몰일자 : 19501112

공훈사항

이만영 일등상사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면 신천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8년 10월 중순, 충북 청주의 제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49년 5월 6일에 춘천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고, 화천-춘천 축선에 대한 방어임무를 담당했다.
이만영 일등상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남침 징후가 농후하던 1950년 초에 방어준비태세를 철저히 했다. 그 결과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의 기습침공을 당했으나 3일간 춘천을 지킴으로써 적들의 공격에 큰 차질을 주었다. 사단 장병들은 6월 27일에 춘천에서 철수하여 원주-충주-문경을 연결하는 축선에서 7월 한 달 동안 지연전을 실시했다.
제6사단은 용기동과 신녕-화산 일대의 방어진지를 축차적으로 점령하며 북한군의 8월 및 9월 공세를 격퇴했다. 그리고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보조를 맞추어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지금까지 방어하던 신녕 북방지역에서 반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9월 18일에 조림산 일대의 북한군을 포위 섬멸하고자 했으나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했다.
이만영 일등상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9월 19일에 사단의 주공으로서 조림산을 공격했고, 이후 북한군은 9월 22일부터 퇴각하기 시작했다. 연대 장병들은 퇴각하는 북한군 제8사단을 함창 방향으로 추격하여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하고, 10월 5일에 차량편으로 서원(춘천 북쪽 17km)까지 이동하여 38도선을 돌파했다. 이후 사단은 10월 14일에 덕원을 탈환하고 마식령을 넘어 10월 19일에 성천-순천을 점령했다.
이만영 일등상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10월 21일 아침에 순천을 출발, 개천과 희천 방향으로 진격하여 23일에 희천을 점령했다. 이후 유엔군은 10월 24일에 1차 총공격으로 압록강까지 진격하고자 했다. 당시 제7연대는 10월 26일에 압록강 부근의 초산을 점령했다. 한편 중공군은 10월 26일에 압록강을 향해 돌진하던 국군과 유엔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이에 연대는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 포위망을 돌파하며 철수를 감행했다. 그는 10월 31일에 개천으로 철수할 때에 철수로를 차단한 적들과 전투를 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11월 12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영 일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4판-6면-02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6-ㅅ-00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