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영(이만영)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830433
  • 전몰일자 : 19520430

공훈사항

이만영 일병은 1926년 8월 20일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9월 18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만을 마친 후 수도사단 제1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만영 일병이 전선에 배치될 무렵 연대는 554고지-고황봉-36고지-강정을 연하는 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1951년 10월 10일에 사단 포병과 군단을 지원하는 미 제196포병대대 1개 포대의 지원과 동해안으로부터 함포지원을 받아 가경지 고개-명호리 선으로부터 돌진하여 351고지(월비산 동쪽 2km)-148고지(고성 동남쪽 3.5km) 선을 탈취하고 월비산 공격준비에 들어갔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10월 13일 폭우와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재공격을 감행하여 월비산 8부 능선까지 진출하였다. 고전 끝에 월비산의 적진에 접근한 다음 일제히 돌격을 개시하자 일각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17일에 다시 고봉리-146고지 선을 점령하고 19일에 공격을 재개하여 201고지-적벽산까지 확보하여 남강 남쪽의 북한군을 모두 구축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남강까지 진출한 후 11월 16-17일에 방어지역을 제11사단에 인계하고 후방지역 공비토벌을 위해 호남지방으로 이동하였다.
이만영 일병은 호남지구의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되었다. 1952년 2월부터 백아산, 모후산, 조계산 지구에 대한 소탕작전과 반복수색을 전개하였다. 수색정찰은 적의 방어진지나 활동을 탐색하는데 주목적을 두고 실시하였으며, 전투정찰은 매복, 습격 등의 활동으로 북한군 포로를 획득하는데 주목적을 두고 운용되었다. 정찰활동은 주로 야간에 전개되었는데 이 일병과 일부 병력은 북한군 정찰대와의 작은 충돌로 전투가 확대되어 쌍방 간에 수 시간 동안 포격전이 전개되었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1952년 3월 14일까지 호남지구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고, 화천으로 이동하여 금성천 북안의 미조리 선에 재배치되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임했던 이만영 일병은 1952년 4월 30일 금성천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이 투척한 포탄에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7판-1면-10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09-ㄱ-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