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연(李萬淵)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0610005
  • 전몰일자 : 19530605

공훈사항

이만연 일등상사는 1913년 5월 9일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서 출생했다(세부 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춘계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4월 중순경,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만연 일등상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제5사단은 강원도 인제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선 확보에 성공했다.
5월 하순 공세로 전환한 사단은 美 제1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한계리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6월 17일 목표인 서화리 일대 고지들을 점령하며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을 잇는 新캔자스선을 확보했다. 8월 초순 美 제10군단에 재배속된 사단은 8월 말부터 10월 14일까지 40여 일간 양구 지역 가칠봉 전투를 치르면서 혈전을 벌인 전선을, 10월 20일부로 국군 제3사단에게 인계하고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1952년 1월 23일부터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방어에 투입되었다. 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9사단은 고성 북쪽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사단을 공격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적은 7월 10일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사단은 적의 기습공격으로 同 고지를 탈취당했으나, 제27, 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이 고지를 탈환했다. 사단은 11월 10일 현 전선을 제15사단에 인계하고 간성으로 이동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4월 15일부로 제2군단에 배속되어 김화지역의 제3사단 전선을 인수받아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했다. 이만연 일등상사가 소속된 제36연대는 좌측 전방 949고지 일대에 투입되어 주진지 및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이후 사단 전방의 중공군 제180사단이 5월 12일 사단의 전초진지인 689고지(텍사스고지)를 공격해 옴으로써, 사단은 5월 17일까지 4차례의 역습을 실시한 끝에 적을 격퇴했다.
사단은 중공군의 6월 10일 하계공세가 시작되기 전까지 전초진지와 주진지 보강을 계속 실시했다. 이만연 일등상사는 소대원을 통제하며 주진지인 949고지를 보강 중 6월 5일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연 일등상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4판-5면-23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5-ㅊ-063)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