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억(李万億)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31081
  • 전몰일자 : 19510917

공훈사항

이만억 일병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아현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일병은 1950년 12월 29일에 입대 후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37, 38도선 일대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고 제9사단은 강릉 일대에서 공격작전을 하고 있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제9사단은 경미한 적의 저항을 받으며 4월 중순 하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이후 제9사단은 1951년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5월 7일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중공군은 1951년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의 결과로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9사단은 1951년 5월 29일부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포천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와이오밍(Wyoming)선(캔자스선 북방 20km 내외의 철의 삼각지대를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6월 3일부터 11일까지 중공군 제65군 예하 제165사단과의 격전 끝에 고대산을 확보했다.
이후 사단은 철의 삼각지 확보에 중요한 감제지형인 김화읍 계웅산 전투에 투입되어 치열한 공방전 끝에 1951년 6월 28일 동 고지를 확보한 후, 계속되는 적의 역습을 격퇴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진지를 지켜내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951년 9월 17일 끝내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억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8-ㅊ-08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