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식(李萬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7361
  • 전몰일자 : 19500813

공훈사항

이만식 일병은 경상북도 경주군 교리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후퇴하던 1950년 8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만식 일병은 안동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안동 북쪽 일대에서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하였으며 8월 3일 길안과 청송 일대에 새방어선을 설정해 이곳으로 철수하였다. 이어 8월 5일부터 적의 대규모 공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때 이 일병과 장병들은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다음날까지 구수동을 경유하여 의성 일대로 다시 철수하였다. 사단 병력이 의성으로 철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청송-기계 축선이 무방비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9일 기계를 점령한 후 포항으로 전진할 때까지 거의 저항을 받지 않았다. 이들은 이미 보현산 일대에 침투한 제766부대와 연결을 지으면서 전차 및 지원포병으로 증강된 1개 연대 규모의 병력을 투입하고 주력을 후속시키고 있었다. 북한군 제12사단이 청송-죽장-기계-안강 축선으로 침공하여 포항을 점령하자 수도사단이 제17연대를 배속받아 기계-안강 일대에서 강력한 방어 작전으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고 있을 때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안강 북쪽고지 일대로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였으나, 미처 진지도 편성하기 전에 적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아 많은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포병과 공군기의 지원으로 고지를 재탈환한 후 기계를 향해 전진하였다.
이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전투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만식 일병은 1950년 8월 13일 기계 부근 전투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며 용감히 싸웠으나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4판-8면-08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2-ㅍ-07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