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식(李萬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52542
  • 전몰일자 : 19510303

공훈사항

이만식 일병은 1932년 8월 1일 경상북도 상주군에서 출생했다. 이 일병은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4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포항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격전 중인 상황이었다. 연대는 9월 14일까지 포항, 형산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뺏고 뺏기는 공방전 끝에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총반격태세로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작전으로,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연대는 파죽지세로 나아가 강릉(30일)을 탈환하고, 10월 2일 38도선을 돌파하여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했다. 연대는 11월 11일부터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 전방에는 북한군 제10사단이 투입되었다. 적의 집중공격에 맞서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진지가 돌파당하자 평창으로 철수했다. 국군 철수과정에서의 부대 간격을 이용하여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영주 방향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이에 연대는 1951년 1월 14일부터 22일까지 강원 영월 동남쪽 남대리 부근의 주실령, 옥석산, 어래산 일대에서 침투한 북한군 제31사단을 포위 격멸했다.
1951년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때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적의 집중공격으로 진지가 돌파당하고, 전세가 불리해짐에 따라 상급부대 명령에 의거 12일 원주로 철수했다.
2월 21일 유엔군의 킬러작전이 개시되었고,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횡성군 강림-안흥-봉화산 방향으로 진격했다. 연대는 봉화산을 탈취하기 위해 3월 1일부터 4일까지 수류탄과 총검이 난무하는 혈전을 벌였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 봉화산을 빼앗지 못하고 정선 일대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3월 3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6-ㅈ-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