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식(李萬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7371
  • 전몰일자 : 19500627

공훈사항

이만식 일병은 충청남도 대전시 홍도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8월에 수립되었으나 사회는 북한공산세력의 침투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는 조국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힘이 있는 군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군 입대를 결심하여 1949년 10월경에 서울 용산의 제17연대로 입대했다.
이만식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동년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옹진지구전투사령부에 예속되면서 제2연대의 38도선 경비임무를 인수했다. 이후 북한군의 도발이 잠잠해지자, 국군은 1950년 3월 1일부로 옹진지구전투사령부를 해체하고, 좌측에서 방어하던 제18연대를 옹진반도에서 철수시켜 수도경비사령부 예하로 복귀시켰다. 이로써 옹진반도에는 제17연대만 남게 되었고, 연대는 64km의 옹진반도 정면을 2개 대대가 담당하도록 배치하고 1개 대대는 예비로서 옹진 부근에 집결시켰다.
북한군(제6사단 14연대와 제3경비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포격과 동시에 전면 남침을 시작하여 아군의 전방대대 방어진지를 양익포위하려 했다. 당시 제17연대 장병들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적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다. 연대는 전투력의 열세와 지형의 불리한 조건에서 싸웠으나 오전 7시에 옹진 정면이 돌파당할 위기에 처했고, 이에 예비대인 제2대대를 투입하여 적의 역습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북한군은 아군 전방대대 간의 전투지경선인 취야-양원, 취야-강령 국도를 향해 공격함으로써 아군 방어지역은 오후 1시부터 동서로 양분되고 말았다.
이만식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오후 2시에 연대로부터 강령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대대 장병들은 지연전을 하며 철수를 거듭하다가 밤 11시 반에 강령을 거쳐 부포항에 도착했다. 적들은 야간에는 조용하였으나, 26일 아침이 밝아오자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전 11시경에는 적의 포탄이 점점 부포항 쪽으로 가까워졌다. 그는 철수하던 부대를 엄호하던 중 적 포탄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고 해군에서 지원한 LST함정을 타고 인천으로 철수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6월 27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0판-2면–018호)를 국립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6-ㅂ-04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