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식(李万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1705823
  • 전몰일자 : 19500825

공훈사항

이만식 이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1949년 12월 하순에 강원도 춘천의 제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소총병으로 보직되었다. 연대는 제6사단에 예속되어 있었으며, 연대지휘소를 춘천에 위치시키고 화천-춘천 축선을 담당했다.
이만식 이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북한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방어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는 중대원들과 함께 방어진지에 유개호를 마련하고 호(壕)간에는 철조망을 설치하고 그 중간에는 대인지뢰를 매설하는 등 방어준비태세를 강화했다.
북한군 제2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방어진지를 무력화한 다음에 SU-76자주포를 앞세우고 쳐들어왔다. 연대 장병들은 곧바로 전방지역에 투입되었고, 이후 소양강을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함으로써 6월 27일까지 적 부대의 춘천 점령을 저지시켰다. 이후 제7연대는 6월 27일 오후 1시에 춘천에서 철수하여 원창고개를 거쳐 6월 30일에 원주로 철수했고, 7월 1일에 충주를 거쳐 4일에 음성으로 이동하여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키다가 10일에 괴산을 거쳐 문경으로 이동하여 사단에 합류했다.
이만식 이병이 소속된 제6사단은 7월 14일부터 이화령과 조령 등 문경 일대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17일에 점촌 북방의 영강방어선(옥녀봉과 413고지)으로 철수하며 격전을 벌였다. 사단은 북한군의 계속된 공격으로 8월 3일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일대로 철수하여 낙동강 선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한편 북한군은 8월 5일에 낙동강을 도하하였고, 8월 10일 새벽에 위천을 건너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사단은 8월 17일에 매봉산-365고지로 철수하여 21일까지 고지쟁탈전을 벌이다가 신녕으로 철수했다.
이만식 이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8월 25일에 신녕 북방 5km 지점에 위치한 화산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했다. 화산은 신녕을 확보하는데 매우 중요한 지역인만큼 전투는 매우 치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식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3197국)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44묘역-7판-13203)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9-ㅅ-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