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술(李萬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3116
  • 전몰일자 : 19500915

공훈사항

이만술 일병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9월 초순 제주에 있던 육군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훈련소의 조교 요원으로 배치되었다.
육군본부는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자, 7월 초순에 각도별로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여 신병 확보와 더불어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가 대구에서 창설되었고, 신병교육을 위해 7월 11일에 제25교육연대가 창설되었다. 이는 7월 17일에 경북편성관구사령부 제7교육대로 개칭되었고, 8월 1일에 육군중앙훈련소로 개칭되었다가, 8월 14일 국본 일반명령 제46호로 육군본부 직할로서 대구에 육군 제1훈련소, 부산에 육군 제2훈련소로 재창설되었다.
이만술 일병이 육군 제2훈련소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하고 있었다. 당시 후방지역에서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들이 좌익 빨치산 세력들과 합세하여 군 주요시설과 정부기관이 밀집되어 있는 대구와 부산 지역에 대한 습격, 파괴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즉,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어 정찰대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전선 상황이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제2훈련소는 교관·조교를 비롯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게릴라들의 공격에 대응해 왔다. 이 일병은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기동타격대로서 이들 게릴라 소탕작전에 앞장서 왔다. 9월 10일 부대 인근에 적 게릴라들이 출몰하자 이 일병과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이만술 일병은 적과 맞닥뜨려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어 치료를 받던 중 9월 15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2판-7면-04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2-ㄱ-03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