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순(李萬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3700
  • 전몰일자 : 19530206

공훈사항

이만순 일병은 경기도 시흥군 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고자 1950년 11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청천강 선에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고, 제7사단도 철수하여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 준비 중이던 상황이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때, 연대는 철수하여 영월 동북방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영월전투에 투입되어 이를 탈환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영월을 탈환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과 리퍼작전(3. 7.~3. 31.) 때 연대는 평창군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3월 하순 인제군 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초 유엔군은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연대는 공격을 전개하여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의 신풍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5월 16일 시작된 중공군 5월 공세 때 연대는 중공군 제79·81사단의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유엔군은 5월 말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연대는 8, 9월 동안 백석산과 주변 고지들을 탈취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백석산 주봉 탈취에는 실패하고 9월 28일 동 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 후 양구로 이동했다.
사단은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잇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연대는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한 중공군의 3차에 걸친 공격(1차 : 1951. 12. 25~28, 제2차 : 1952. 2. 11~13, 3차 : 1952. 10. 6~14)을 막아내며 이 고지를 지켜냈다.
이후 연대는 큰 전투 없이 진지보강을 하면서 수색정찰, 매복, 교란작전을 지속했다. 이 일병은 1953년 2월 6일 수색정찰 작전 중에 적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위패(33판-40면-2178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4-ㄷ-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