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순(李万順)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234030
  • 전몰일자 : 19510218

공훈사항

이만순 이병은 1930년 8월 1일 경기도 인천시 송림동에서 출생했다.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이병은 1951년 1월 2일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7도선 일대로 후퇴하여 적과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영월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 무렵 유엔군 후방지역에 제2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중동부전선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2군단은 영월을 거점으로 응봉산, 만경대산, 마대산 등지에 병력을 전개하고 영주-봉화-춘양 방면으로의 침투를 시도했다.
북한군 제2군단 병력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국군 제3군단은 제7사단을 군단의 좌측부대로 후천-완택산(△916)-두평(영월 동쪽 4km) 간에 배치했다. 제3군단은 제3사단이 남대리 전투에서 승리하자, 제7사단에 제3사단 제23연대를 배속하여 곧바로 영월탈환작전을 전개했다.
사단은 1월 19일 공격을 개시하여 만경대산을 점령하고, 20일 영월 탈환의 최후 교두보였던 응봉산마저 점령했다. 1월 21일부터 사단은 영월에서 단양으로 흐르는 남한강 변까지 진격하여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지역 내의 잔적소탕작전에 돌입했다. 퇴로를 차단당한 적은 분산된 상태로 남한강을 건너 서쪽의 미 제10군단 지역으로 퇴각했다. 사단은 1월 24일 미 제7사단과 연합작전으로 영월 시가지 탈환작전에 나서서 백병전을 전개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당일 영월을 점령한 후, 퇴각하는 적을 격멸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북한군 제2군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평창 일대를 내주고 후방으로 후퇴했다. 적은 계속해서 영월을 점령하려고 기도했으나, 연대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이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 적탄에 맞아 2월 18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순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8묘역-5판-1830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1-ㅋ-09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