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수(이만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802935
  • 전몰일자 : 19500926

공훈사항

이만수 일병은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던 때인 1950년 8월 25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출생지 및 출생 일자 미상).
이만수 일병은 전선에 배치되어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1950년 8월 29일까지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제2군단(제3, 제13, 제15사단)을 투입하여 대구로 집중하였으나 이 일병과 사단 병력이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저지 사격을 가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그들의 막강한 저항에 부딪친 북한군은 현풍-왜관-328고지-수암산-유학산-신주막 선에서 저지되었다.
사단은 8월 30일 전투지경선을 조정하고 741-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으며, 이 일병과 제1사단 장병들은 팔공산 북방 정면에 배치되었다. 9월 4일 북한군 제3사단이 부대 간격을 따라 왜관-다부동 도로 남쪽 464고지로 침투하고 있었으며, 좌 측방 왜관도 무인지경이 되고 우 측방에서는 북한군 제13사단이 다부동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가산으로 진출하려던 이 일병과 사단 병력은 다음날 5일까지 북한군 제1사단 1개 대대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철수하고 말았다.
이 일병을 비롯한 장병들은 9월 25일 낙동리에서 도하를 완료하고 추격 작전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부대 장병들은 선산-상주-보은을 거쳐 미원으로 진출하면서 낙동강 전선에서 소백산맥의 험한 준령을 따라 북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북한군 패잔병을 추격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소탕하였다.
이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이만수 일병은 1950년 9월 26일 상주지구에 잔류하여 잔적을 소탕하던 중 북한군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7판-1면-49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ㅊ-06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