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수(李萬秀)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400443
  • 전몰일자 : 19501225

공훈사항

이만수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내당동에서 1931년 9월 11일에 출생하였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6월경에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고 전쟁 초반 불리한 전세에 지연전을 펼치며 낙동강 부근까지 후퇴했다.
제8사단은 반격 준비를 마치고 1950년 9월 국군의 총반격 작전에 합류해 10월 3일 서울에 도달하고 1950년 10월 8일 38도선을 통과하여 북한지역 깊숙이 진출하였지만 1950년 11월 9일부터 대대적인 중공군의 공세에 직면했다.
이에 제8사단은 묘향산 동쪽의 영원과 맹산 지역에서 방어태세를 강화하여 중공군 제42군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하였다. 유엔군사령부는 중공군의 제1차 공세가 끝나고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중공군이 또다시 조직적인 공격을 가해오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시키는 계획을 수립해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단행했다. 그중 제8사단은 형제봉-관리 전투에 참가하여 대규모의 중공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진지의 일부를 잃고 맹산 북쪽의 소가래봉으로 탈출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1월 27일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또 한 번의 방어 전투를 실시했다. 중공군은 제126사단을 동부 산악지대로 우회시켜 맹산 동북쪽 애창천 계곡, 즉 사단의 배후로 침투시켰다. 하지만 수색 정찰로 이를 확인한 제8사단은 연대의 애창 방어진지를 우회하여 맹산에 집결한 중공군과 교전하였고 그 결과 중공군과 제8사단 모두 일부 병력이 분산되었다.
철수 이후 부대를 재정비한 제8사단 장병들은 1950년 12월 24일부터 이듬해 1월 6일까지 강원도 춘천시에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방어했다. 당시 중공군은 3개 사단을 이끌고 제8사단 방면으로 진격해왔다. 이에 제8사단은 혹한의 상황에서도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며 적에 대한 지연전을 실시했으나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0년 12월 25일 중공군의 포격에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수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7면-00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0-ㄲ-04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