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수(李萬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175540
  • 전몰일자 : 19521223

공훈사항

이만수 이병은 1929년 12월 22일에 출생했다(출생 장소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작전을 진행 중인 1950년 10월 중순경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했다. 이후 이만수 이병은 경기도 김포에 있는 공병학교에 입대하여 공병 주특기교육을 이수한 후 제1공병단에 배치되었다.
제1공병단은 1948년 8월 19일 경기도 부평에서 제1공병대대와 제1자동차중대, 제1정비중대, 제1공병기지중대, 공병중공장중대, 경장비중대를 통합하여 창설되었다. 이덕수 하사는 공병단에 배치된 후 공병 확장과 교육, 그리고 38도선 일대의 진지구축과 장애물 설치작업에 전념했다. 1950년 8월 제1공병단은 제1201건설공병단으로 개칭되어 육본직할 부대로 편성되면서 전방 사단과 군단의 공병 능력을 초과하는 교량・도로 건설 및 보수와 비행장 건설 및 보수 임무를 수행했다.
이만수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공병단의 책임지역도 38도선 이북까지 확대되었고, 방어작전 때 유엔군 공군이 파괴한 교량과 철교 보수 수요도 늘어났다. 이후 중공군이 불법 참전하여 두 차례의 기습공격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38도선으로 철수작전을 펼침에 따라 공병단도 함께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철수로 유지・보수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전투부대의 원활한 철수작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제1201공병단은 후방지역의 교량 및 도로 보수와 비행장 복구 임무를 지속 수행했다.
그러나 이만수 이병은 1950년 12월 초순경 황해도 사리원 일대의 도로보수 작업 중에 침투한 적의 습격을 받고 교전 중에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제27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는 이 병원에서 정성스럽게 치료를 받았으나 12월 23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수 이병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50707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43묘역-7판-1434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8-ㅍ-030)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