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수(李萬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9712595
  • 전몰일자 : 19500919

공훈사항

이만수 이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북한군의 남진에 밀려 소백산맥 선까지 후퇴하자, 1950년 7월 중순 제1교육대에 입대했다.
육군본부는 1950년 7월 8일 전라도 지역에 전남·북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12일 제7사단 예하에 제3, 9연대를 편성하여 전라남·북도 지역에서 지연전을 하면서 신병모집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 그러나 이 연대 병력들은 대부분이 무기와 장비를 갖추지 못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16일 제3연대를 제1교육대로, 제9연대를 제2교육대로 각각 개칭한 후, 영남지역으로 이동시켜 신병교육을 실시했다.
한편, 제8연대는 초기전투와 지연전에서 전투력이 소진된 관계로 7월 23일 해체되어 제18연대에 편입되었다가, 8월 20일 제7사단이 창설되면서 제3·5연대와 함께 사단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8사단이 신녕 북방에 투입되어 집중 공격을 가하자 국군 제6사단의 방어선이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8월 29일 제7사단 제5연대(-)와 이 이병이 소속된 제8연대 제1대대를 제6사단에 배속했다. 제8연대 제1대대는 방가산~화산으로 연결된 646고지 북쪽 능선 상의 무명고지를 점령하고, 제6사단과 제8사단 전투지경선 상에 형성된 공간지대에 대한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이곳에서 대대는 치열한 교전 끝에 적을 물리침으로써 적의 신녕-대구 진출을 저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9월 2일 북한군의 공세(9월 공세)가 시작되자 연대는 제6사단에 배속되어 영천 북방의 신녕지구 전투에 투입되어 적을 물리침으로써 적의 신녕-대구 진출을 저지한 후, 9월 5일 제8사단에 배속되어 영천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이병과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 제15사단과 13일까지 뺏고 뺏기는 혈전 끝에 적의 돌파를 저지하고 영천을 탈환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16일부로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안강 북쪽의 도덕산 방면으로 진격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격퇴했다. 9월 19일 연대는 수도사단 제18연대와 함께 합동으로 기계 일대 561고지를 공격해서 점령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두에서 돌격을 감행하다 적탄에 맞아 9월 19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수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49-ㅅ-04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