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수(이만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202214
  • 전몰일자 : 19501004

공훈사항

이만수 소위는 충청남도 아산시 신포1가 10번지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소위는 1950년 9월 13일에 갑종간부 2기생으로 동래에서 2주간의 군사훈련 후 임관하여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소위가 입대할 무렵 제8사단 장병들은 전쟁 초기 북한군의 공세에 1950년 8월 말까지 지연전을 펼치면서 낙동강 지역까지 후퇴하게 되었다. 영천군은 대구와 포항을 잇는 요충지로써, 제1군단과 제2군단을 연결하는 지점이었다. 만일 영천군 방면의 방어선이 무너진다면 낙동강 방어선의 종심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이에 제8사단 장병들은 경상북도 영천군 자양면 기룡산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며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이 소위의 부대 전입 당시 제8사단은 9월 초 북한군의 막강한 화력에 직면하여 영천 읍으로 철수하게 되었으며, 읍내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게 되었다. 곧이어 국군 제1사단과 제6사단의 증원부대가 도착해 전세가 역전되어, 국군이 북한군 제15사단을 포위하게 되었다.
제8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한 후 9월 8일 영천군의 탈환을 시작으로, 북진과 반격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국군은 1950년 9월 16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이어 낙동강에서 국군 총반격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제8사단은 정비를 완료하고 1950년 9월 20일 작전에 합류해 제2군단의 우익부대로서 정면의 적을 압도하며 진격을 거듭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9월 21일 적 1개 연대에 대하여 공격을 실시하였다. 또한 좌측의 제21연대와 협조하여 1950년 9월 22일 오전 6시에 영마산을 점령하였다. 1950년 9월 25일 구산동 부근의 북한군을 격파한 제8사단은 의성 부근에서 저항하던 북한군에 대해 포위섬멸 작전을 실시하였다. 피아간 치열한 전투 끝에 북한군은 분산되어 패주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10월 3일 양평지구의 적을 격파하여 적의 저항을 받지 않고 빠른 속도로 서울을 향해 진출하였다. 하지만 북진 과정에서 이 소위는 1950년 10월 4일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수 소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ㄴ-01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