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수(李萬洙)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28

공훈사항

이만수 경사는 1920년 10월 19일 충북 음성군 삼성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기도경 경무과 소속으로 재직 중 대전에서 전사했다.
1950년에 들어서면서 북한 유격대가 태백산 일대에 계속 침입하자 치안국은 시흥 육군보병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경찰 간부들을 중심으로 4월 20일 제8·제9전투경찰대대를 편성하여 강원도 영월과 춘천지역에 배치하는 등 전·후방의 치안확보에 노력을 기울였다.
6월 10일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38도선 접경지역인 경기·강원 2개 도에 비상경비태세 강화명령을 내려 북한의 군사동태를 잘 살피도록 하였다.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이 경사는 경무담당으로서 경기지역 경찰서와 지서의 병력·무기현황을 파악하고, 전투 진행상황, 군부대와의 협조사항, 서울·강원·충북·충남경찰국과의 협조사항을 확인하고 상부에 보고했다.
경기도경은 북한군이 수원에 도달하기 전까지 정보수집, 철도경비, 오열 색출, 주요 보급로를 경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북한군의 선두 부대가 7월 4일 수원에 도달했다. 이 경사는 경기지역의 전투현황 파악과 정보를 수집하여 지속적으로 상부에 보고했다.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북한군에 의해 7월 4일 수원이 함락되면서 경기도경 병력도 수원에서 후방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오산-평택-천안을 거쳐 후퇴하는 동안 경기도경은 정보수집과 오열 색출 임무를 병행했다. 7월 15일 경기도경은 대전에 도달하여 적의 공격에 대한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7월 19일 북한군 제6사단과 제1사단이 대전지역으로 밀려들었다. 군부대와 함께 방어선을 갖추고 적의 공격을 저지하던 경기도경 병력은 적의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후퇴해야 했다. 7월 20일 이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다가 부상을 입고 후송되어 치료를 받다가 7월 28일 전사하고 말았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수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50판-5면-24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4-ㄱ-08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