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손(李萬孫)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2059
  • 전몰일자 : 19501002

공훈사항

이만손 일병은 경기도 인천시 송림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8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만손 일병은 전선에 배치되어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1950년 8월 29일까지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제2군단(제3, 제13, 제15사단)을 투입하여 대구로 집중하였으나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사격을 가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그들의 막강한 저항에 부딪친 북한군은 현풍-왜관-328고지-수암산-유학산-신주막 선에서 저지되었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편성에 주력하였다. 대구 북쪽 16km에 위치한 가산(902m)은 중요한 감제고지로서 다부동-대구 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하는 전술적으로 중요한 고지로써 가산을 탈환하여야 하였다. 9월 6일 가산을 점령한 북한군 제13사단과 제1사단이 다부동 남쪽 도로를 차단하고 대구 간 도로를 감제하는 570고지를 장악하였다. 9월 10일 북한군 제1사단이 가산 일대에서 공격을 재개하여 일부 병력을 도덕산(660m) 일대로 남진시키고 일부 병력을 팔공산 일대로 진출시키고 있었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9월 14일에는 대구 북쪽의 약 10km 지점에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이만손 일병을 포함한 연대병력은 9월 25일 낙동리에서 도하를 완료하고 추격 작전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선산-상주-보은을 거쳐 미원으로 진출하면서 낙동강전선에서 소백산맥의 험한 준령을 따라 북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적 제2, 제3, 제4, 제7, 제9사단 등 여러 사단들의 패잔병을 추격하여 그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계속해서 증평, 괴산, 진천, 음성 등에서 잔적 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만손 일병은 1950년 10월 2일 봉일천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손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2판-3면-18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2-ㄲ-01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