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성(李萬成)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66534
  • 전몰일자 : 19511001

공훈사항

이만성 하사는 1926년 9월 14일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1년 3월 19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강원도 인제군 한계리 일대까지 진격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한석산, 매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방어선인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지켜냈다. 연대는 5월 7일부터 13일까지 미주리선 진격전에 참가하여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5월 16일 중공군 제6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은 유일한 보급로인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현리로 물러섰고, 17일 장병들은 장비를 파괴하고 방태산으로 후퇴하여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평창 송계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사단은 5월 말 강릉, 설악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한편,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서울 북방-마석-홍천-하진부리-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저지한 유엔군은 5월 20일 이후부터 전 전선에 걸쳐 반격을 개시했다. 이에 발맞추어 제1군단은 5월 26일 공격을 개시하여 27일 양양까지 진격함으로써 캔자스선을 확보했다. 군단은 계속 공격하여 6월 중순경에는 신캔자스선(화천-펀치볼-향로봉-거진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제3사단은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수색정찰, 매복작전, 보급로 경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 하사는 전투 시마다 솔선수범하여 진두에 나섰고, 간성 일대에 대한 수색정찰작전 간에도 앞장서다가 10월 1일 적 정찰대의 기습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성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9894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23판-14면-866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8-ㄲ-05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