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성(李萬成)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47801
  • 전몰일자 : 19510608

공훈사항

이만성 일병은 1932년 7월 15일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2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총공세와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중부전선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만성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1951년 2월 11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전 전선이 밀리게 되자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2월 25일 중공군의 저항이 경미하여 사단의 공격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미 제7사단의 공격을 지원하기 위하여 이 일병과 연대병력을 신속히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하여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하도록 하였다. 5일간이나 계속된 폭설로 인하여 대관령-횡계리-구산리 간의 도로가 차단됨으로써 공격이 지연되었고 3월 1일에 이르러서야 경강국도를 중심으로 현리-양양을 연하는 카이로선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이어 4월 15일 재반격을 개시한 이만성 일병과 장병들은 한계령-오색리-관모봉을 연하는 선으로 진출하여 주저항선을 구축하였으며, 적의 보급 및 병력의 집결지로 판단되는 설악산을 점령하고 가리봉-용대리로 진출하기 위하여 약수리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중공군은 4월 22일 서울을 목표로 제5차 공세를 감행하고, 이어 5월 16일에는 인제군 일대에 배치된 국군 제3군단을 포위 섬멸하기 위한 5월 공세를 감행하였다. 이만성 일병과 장병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끝내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고지를 함락당하고 말았다. 이후 6월 4일 짙게 낀 안개로 관측이 불가한 틈을 이용하여 적은 강력한 박격포 사격의 엄호하에 이 일병과 연대병력의 전초진지인 산두곡산과 원봉 전장의 1209고지를 공격해왔으나 치열한 격전을 펼쳐 격퇴시켰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만성 일병은 1951년 6월 8일 향로봉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성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09834 육)을 추서하고 위패(33판-40면-2178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5-ㅇ-00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