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섭(李万燮)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9500671
  • 전몰일자 : 19500821

공훈사항

이만섭 이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6월 30일 제1사단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소총병으로서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출생 일자 및 출생지 미상).
이만섭 이병이 전선에 배치될 당시 상황은 매우 험난하였다. 이 이병이 소속된 연대는 7월 13일 미원 북방에서 방어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북한군 제15사단이 괴산에서 부대정비를 마치고 16일 미명 미원 북방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부흥리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이 이병과 연대병력은 한때 위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연대는 북한군의 진출을 더이상 허용하지 않고 저지하였으며, 다음날에도 전차 3대와 장갑차 12대로 전력을 증강하여 공격을 재개한 북한군을 격퇴하였다.
이만섭 이병과 연대 장병들은 7월 21일 춘양으로 진출하려던 중 화령장의 상황이 확대되자 보은에서 화령장으로 투입되어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이 이병을 비롯한 연대병력은 8월 12일부터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13일 다부동 지역에 집결한 후 새로운 방어선을 점령하기 위하여 연대는 신주막 일대의 진지로 진출하였다.
이 무렵 북한군 제3사단 일부 병력이 약목 일대에서 도하하여 328고지로 공격하고 북한군 제15사단이 국군 제1사단보다 한발 앞서 유학산에 진출하여, 북한군 제13사단은 도로를 따라 신주막으로 진출 중인 연대 정면으로 접근하면서 일부 병력을 우회시켜 미쳐 연대가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674고지를 선점하였다. 이로써 이 이병이 소속된 연대는 방어선 중앙이 돌파되고 다부동이 점령당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으나 전차 7대를 앞세운 북한군 연대 규모의 공격을 받아 복곡 일대로 물러나게 되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이만섭 이병은 1950년 8월 21일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섭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37묘역-2판-1951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1-ㅈ-03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