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섭(李万攝)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5102516
  • 전몰일자 : 19500924

공훈사항

이만섭 이병은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10월 중순, 서울 용산의 제1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4월 19일에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다.
북한군이 6월 25일 새벽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제19연대 본대는 원주에서 기차로 청량리를 거쳐 26일 새벽 5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이후 연대는 춘천 방면의 제7연대와 홍천 방면의 제2연대를 증원하여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30일 오후에 홍천에서 원주로 철수했다. 그리고 7월 한 달 동안 충주-문경(조령)-함창 축선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을 맞아 지연전을 실시하고, 8월 1일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양곡동간 능선 일대를 점령했고, 6일에 선돌주막 남쪽의 새로운 방어진지로 철수했다.
이만섭 이병이 소속된 제6사단은 8월 13일 다시 군위, 의흥을 경유해 매봉산과 산운동 일대로 철수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15일부터 전차로 증강된 북한군 제1사단은 제19연대 방어정면에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제19연대는 계속되는 적의 공격을 받고 피해가 증가하자, 8월 21일 야간에 민부대에 방어진지를 인계하고, 사단 예비가 되었다. 북한군 일부가 8월 27일에 화산 및 조림산을 무혈점령하여 신녕 지역이 위험에 처하자, 제19연대는 신속히 신녕 지역으로 투입되었다.
제19연대는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조림산 탈환을 위해 공격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했다. 반면 북한군은 9월 1일 야간에 전차 2대를 앞세운 보전협동부대로 공격을 개시했고, 연대는 9월 4일까지 강력한 저항으로 격퇴했다. 이후 연대는 9월 5일에 영천 지역에서 위기에 처했던 제8사단을 증원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연대는 9월 6일에 금호강 북쪽에서 영천역과 완산동 방향으로 협공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했다. 이로써 연대는 영천의 위기를 벗어나는 데 기여하고, 8월 12일에 사단으로 복귀하여 반격준비를 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이때 이만섭 이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정면의 조림산을 공격했으나 최초 공격 4일간은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과 기상악화로 돌파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북한군이 9월 21일부터 퇴각하기 시작했고, 그는 퇴각하는 북한군을 추격하던 중에 9월 24일에 함창을 탈환하는 전투에서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섭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0-ㄴ-07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