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선(李萬善)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9801511
  • 전몰일자 : 19520307

공훈사항

이만선 이등상사는 1926년 8월 1일에 충청북도 제천군(現 제천시) 송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까지 후퇴하는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하순경 입대했다. 이만선 이등상사는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7교육대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타부대로 배치되어 낙동강방어선 전투 및 북진작전에 참전하여 복무하다가, 10월 하순경 제5사단 제35연대로 재배치되었다.
이만선 이등상사가 부대에 재배치 무렵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대구에서 재창설 후 10월 13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후방지역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 후 사단은 12월 5일경 전방지역으로 투입되면서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철수하는 아군의 엄호작전 후, 12월 13일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춘천-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고,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등에서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했다. 이어서 사단은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에서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여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9월 4일부터 40여 일간 강원도 양구 일대 가칠봉 전투에서 1,211고지를 3번이나 점령했다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끝내는 동 고지를 적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사단은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내며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확보하여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사단은 이 전선을 10월 20일에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양양으로 이동했다. 이후 사단은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952년 1월 23일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면서,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제9사단으로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제5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에 사단은 진지를 더욱 보강하면서 적정 탐색 및 적 침투 방지를 위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지속했다. 이만선 이등상사는 복무기간 중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3월 7일 소대원을 통제하며 전초진지를 보강 중 적 포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선 이등상사의 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0판-2면-03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4-ㅋ-04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