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석(李萬石)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182678
  • 전몰일자 : 19521012

공훈사항

이만석 이등중사는 1921년 1월 1일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30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총공세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한 상황이었다. 1951년 2월 이만석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사단은 단계적인 공격작전을 전개하여 한강선을 확보하기 위해 영등포 일대에 배치되어 북한군의 진격을 방어하였다. 7월부터 시작된 휴전회담이 판문점에서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투도 계속되고 있었다. 양측은 서부전선에서 대규모 공세를 자제하였지만 신경전과 소규모 전투는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1951년 12월 28일-1952년 1월 8일간에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 일대에서 제15연대를 예비로 확보하고 북한군과 대치중이었다. 1월 3일 오전 8시 일제히 포문을 열고 두매리 고지 일대를 집중사격 하였고 적진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이 이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의 역습을 받기 시작하여 진내에서 백병전까지 실시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수차례 반복된 북한군의 역습을 받아 그때마다 전 화력을 집중하여 북한군의 접근을 저지하였으나, 탄약이 소진되고 누적된 피로로 인하여 전력이 급격히 감퇴되었다. 이후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7월 13일부터 경남 밀양으로 이동하여 운문산-신불산 지구에서 공비 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이후 불모고지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간 10월 1일 제1사단은 군단예비에서 군단의 중앙 미 제3사단의 작전임무를 인수하여 임진강 동서안, 역곡천 남안을 연한 주저항선을 방어하게 되었으며 텟시 고지 및 니키 고지에 대한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준비를 갖추면서 진지를 보강하고 있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솔선수범하며 선두에서 용맹을 발휘하였다.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만석 이등중사는 1952년 10월 12일 연천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석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5216 육)을 추서하고 유해(39묘역-1판-1196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4-ㄱ-07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