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봉(李万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7169
  • 전몰일자 : 19500725

공훈사항

이만봉 일병은 강원도 영월군 북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경 홍천지역의 38도선 방어를 맡고 있던 제6사단 제8연대에 입대했다. 이 일병은 유사시 조국을 반드시 수호하겠다는 의지와 사명감으로 경계임무에 적극 임했다.
제8연대는 6·25전쟁 발발 불과 5일 전인 1950년 6월 20일 제2연대에 38도선 경계진지를 인계하고 서울로 이동하여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되었고, 이동한 지 이틀 만에 전쟁을 맞았다. 전쟁이 발발할 때 이 일병이 소속된 제8연대 제1대대는 연대 후발대로서 홍천에서 서울로 행군 중이었다. 대대는 이동 완료 후 삼각지의 연대본부에서 대기하다 28일 새벽에 한강을 건너 시흥에 집결했다.
28일부터 대대는 혼성수도경비사령부 제8연대 예하부대로 한강방어선의 영등포와 신길동 일대에 배치되었다. 북한군 제4사단은 29일부터 수차례 여의도를 거쳐 한강을 건너 대대 진지를 공격했으나, 대대 장병들은 방어와 역습을 반복하며 이를 물리쳤다. 그러나 7월 3일 반파된 한강철교를 이용하여 적 전차가 남하하여 노량진을 거쳐 영등포 시내로 진입하고, 오류동 일대의 적도 영등포 시내로 진입하게 됨에 따라, 대대는 진지 전방과 후방에서 동시에 적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에 대대는 상급부대 명령에 따라 시흥으로 철수했다.
7월 5일 제8연대는 제1, 제1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연대는 7월 10일 진천 남방의 봉화산, 문안산 일대에서, 12~13일 청주 북방의 미호천 방어선에서 적 제2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지연전을 전개했다. 7월 14일 연대는 보은군 고은리 일대에 배치되었고, 적 제2사단은 이날 오후에 전차를 앞세우고 공격을 감행했다. 연대 장병들은 16일까지 이 일대에서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연대는 17일 철수하여 안동으로 이동했으나, 전투력의 소진으로 7월 23일 해체되어 제18연대에 편입되었다.
7월 23일부터 제18연대는 영주, 길안-청송 방어선에서 북한군 제12사단과 격전을 치르면서 적들의 남진을 8월 6일까지 지연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분전하다가 7월 25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봉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4판-7면-17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8-ㅁ-030)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