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복(李萬福)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7905779
  • 전몰일자 : 19510220

공훈사항

이만복 하사는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또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그는 1951년 1월 20일 제7사단에 입대하여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입대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7도선 일대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고, 제7사단은 영월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제7사단은 제3사단 제23연대를 배속받아 영월 탈환작전에 나섰다. 사단의 영월 탈환작전은 1951년 1월 19일 제3연대와 제8연대가 각각 주공과 조공으로 만경대산과 연하리의 694고지를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제8연대는 연상리에서 공격을 시작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공격 첫날 694고지를 점령했다.
사단은 곧이어 만경대산 서쪽 6km 지점의 응봉산 탈환에 나섰고, 연대는 조공부대로 583고지를 점령한 후 응봉산을 점령한 제3연대와 연결했다. 사단은 1월 21일 영월에서 단양으로 흐르는 남한강까지 진격하여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했다. 이후 사단은 미 제7사단과 연합작전을 전개하여 영월 시가지 탈환작전을 벌여 이를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적이 물러남에 따라 1월 25일 사단은 공세로 전환하여 평창 북방으로 진출했고, 2월 초순까지 횡성 동북방의 창동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중공군은 횡성-원주 축선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2월 11일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개시했고, 횡성 일대에 배치된 국군 제8사단은 적의 집중 공격에 밀려 원주 후방으로 철수했다. 이에 돌파구 측방의 창동리에 배치되었던 사단은 측방이 노출되면서 20km 정도 후방으로 철수했으나, 적은 틈을 주지 않고 추격했다. 적은 계속해서 영월을 점령하려고 기도했으나, 연대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진지를 사수하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2월 20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복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6판-3면-15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1-ㅋ-09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