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복(李萬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4254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만복 일병은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8년 7월 중순에 대전의 제2여단으로 입대하여 여단 직할부대인 의무대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충남 대전의 제2육군병원에서 주특기 교육을 수료하여 의무병으로서 전문기술을 향상했다.
제2여단은 여순10·19사건을 진압하기 위하여 1948년 10월 19일에 현지에서 여순지역으로 이동하여 전투사령관(준장 송호성)의 지휘 하에 11월 9일까지 반란군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여단은 11월 20일에 지리산으로 이동하여 이 일대에서 활동하는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그리고 1949년 5월 12일 제2사단으로 승격되어 예하 부대로 제5, 제16연대와 포병대를 두었다. 그리고 동년 11월 5일에 공비소탕작전을 위하여 안동지역으로 이동하여 태백산 지구 일대에서 활동하는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고, 1950년 4월 14일에 충남 대전으로 복귀했다. 이만복 일병은 잦은 부대이동과 공비소탕작전 간에 적극적으로 부상자를 치료하는 등 의무 지원을 실시했다.
국군은 1950년 6월 25일에 전 전선에 걸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군사력에서 열세하고 방어준비태세도 미흡했던 국군은 북한군의 공격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방어체계는 붕괴되었다. 이에 육군총참모장은 후방의 사단들을 방어계획에 의거 전방방어지역으로 증원토록 조치했다. 제2사단은 신속히 의정부 지역으로 이동하여 제7사단을 증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사단은 우선 이동이 가능한 제5연대를 투입시켰다.
이만복 일병이 소속된 의무소대는 제5연대 장병들과 함께 따라 의정부로 이동했다. 즉 6월 25일 대전에서 기차로 출발하여 저녁 8시에 의정부 북방의 금오리에 도착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연대는 즉시 축성령에 배치된 제3연대를 초월하여 반격작전을 실시하라는 명령을 수령하고 축성령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제5연대가 축성령에 도달했을 때, 그곳에 배치되어 있다는 제3연대는 없고, 이미 그곳을 점령하고 있던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병력들은 뿔뿔이 흩어져 금오동으로 철수했다. 그가 소속된 의무대는 철수 중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갑자기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자 부상자 치료에 정신이 없었다. 이날 그는 부상자를 치료하던 중 적의 총탄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복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6-ㄷ-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