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복(李滿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330568
  • 전몰일자 : 19501111

공훈사항

이만복 이병은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북진하자 조국통일의 선봉에 서고자 일어섰다. 이 이병은 1950년 9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병기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추격작전 중이었고, 제7사단도 추격작전 중인 상황이었다. 사단은 추격작전 때 미 제8군 예비로 경주에 집결해 있다가 9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수안보-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7일 서울 청량리에 도착했다.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한 사단은 김화를 거쳐 11일 평강에 진출하여 잔적소탕을 했다. 사단은 마식령산맥을 넘어 17일 곡산에 도달했으며, 선두부대인 제8연대는 수안까지 진출했다.
이 무렵 사단에는 “국군이 미군보다 먼저 평양을 점령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가 하달되었고, 평양에 가장 근접해 있던 제8연대가 평양 공격부대로 선정되었다. 제8연대는 18일 승호리 일대에서 대동강을 도하하여 김일성대학과 모란봉 일대로 진격했고, 20일 저항하는 북한군 제17, 제32사단의 잔적을 소탕하고 평양을 탈환했다. 이로써 제8연대와 사단은 제1사단과 더불어 최초로 평양을 점령한 부대가 되었다. 이 작전에서 이 이병과 병기중대는 평양으로 진격하는 제8연대에 적시적으로 탄약을 보급하고 화기정비 지원을 함으로써 평양 탈환에 크게 기여했다. 평양이 탈환되자, 사단은 21일 그 북방의 기림리, 노산리 일대까지 진출하여 육군본부 직할로 전환되었다. 사단은 29일까지 평양과 그 북방 일대의 잔적소탕 임무를 수행했다.
10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된 사단은 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로 집결 후, 다음 날 개천 동쪽의 비호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11월 3일 사단은 중공군 제112사단의 공격을 받았고, 사단 장병들은 7일까지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하고 비호산을 지켜냈다. 신속히 진격하는 부대에 적시적으로 탄약 지원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 이병은 탄약병으로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하부대에 대한 탄약 추진에 앞장서 왔다. 하지만 그는 비호산전투에서 탄약보급에 앞장서다 적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1월 11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복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1판-8면-08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0-ㄴ-03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