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범(李萬範)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1603302
  • 전몰일자 : 19500630

공훈사항

이만범 이병은 경상북도 영일군 대송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4월 9일에 대구시 중동의 제6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소총병으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제1대대는 제주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로 출동했다. 그곳에서 그는 제9연대로 편입되었다.
이만범 이병이 소속된 제9연대는 제주도 모슬포에서 창설된 부대로서 제주4·3사건을 진압하고, 대전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서울 용산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1949년 6월 19일에 경기도 포천으로 이동하여 제7사단에 예속되어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제9연대는 포천 북쪽의 추동리-사직리 간의 26㎞의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연대는 제2대대에게 38도선 경비임무를 담당하도록 했고, 연대본부와 제1·제3대대는 의정부 북방 4km 지점인 금오리에 주둔하면서 교육훈련을 하도록 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공격했을 때, 이만범 이병이 소속된 제1대대는 연대의 명령에 따라 신속히 주방어진지를 점령했다. 한편 정면의 북한군 제3사단과 제4사단, 제105전차여단은 30여분에 걸친 포병사격으로 전방의 경계진지를 유린하고 전차와 보병으로 거침없이 공격했다. 북한군 선두 전차 8대는 6월 25일 아침부터 아군의 보병화력이나 105mm 포병사격에도 끄덕하지 않고 포천 방향으로 직행했다. 적 전차는 큰 저항 없이 오전 11시에 포천을 점령했고, 뒤이어 적 보병부대가 아군부대의 주력이 배치된 천주산-가랑산을 공격했다. 이에 오후 2시경에 연대 주저항선이 무너졌으며, 통신마저 끊겨 대대 및 중대별로 분산하여 철수하면서 큰 피해를 받았다.
이만범 이병은 대대 장병들과 함께 육사 교장 지휘로 불암산 동남쪽 210고지를 점령하고, 퇴계원 방향에서 공격하는 적에 대항했다. 6월 28일 새벽 한강교가 폭파되고 국군이 서울에서 철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망우리고개-용마산을 거쳐 광나루로 한강을 건너 안양천 남쪽 고지에 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제9연대는 안양천 진지에서 적의 공격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그는 6월 30일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범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9판-8면-01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2-ㅎ-02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