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록(李萬錄)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51299
  • 전몰일자 : 19530614

공훈사항

이만록 하사는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에서 1926년 1월 6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2년 9월 11일에 입대한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진지 보수에 치중하며 수색 정찰을 강화하였다. 그러던 도중 제8사단 장병들은 1952년 9월 21일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받아 일시적으로 854고지를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미 해군, 공군의 화력지원을 받아 1952년 9월 21~22일간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제8사단은 1952년 10월 25일 강원도 김화군으로 이동하여 수도사단으로부터 수도고지 일대의 작전지역을 인계했다. 수도고지는 1952년 9월간 국군수도사단과 중공군 제34사단, 제35사단 간에 수차의 공방이 벌어졌던 해발 600m 능선상의 고지이다. 수도고지는 그 위치나 규모로 보아 다만 전초에 불과했다.
오히려 수도고지는 적 주저항선의 700m 고지들보다 낮아 적의감제관측을 허용하여, 주간에는 진지공사나 보급추진 등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러나 수도고지는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져 피아간의 주요 결전장이 되어 왔고 이러한 연유로 결코 상실해서는 안 될 고지로 인식되어 동굴 진지로 구축되었다.
제21연대 장병들은 수도고지의 진지공사 및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당시 수도고지 전선은 1952년 10월 이후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강상태는 1953년 5월 13일 중공군의 수도고지 공격으로 종료되었다. 특히 중공군은 6월 12일 포병지원과 함께 정면으로 출현하기 시작하여 수도고지 방면에 2개 대대, 제21연대 우익인 제3대대 정면에 1개 대대, 좌익인 제2대대 정면에 2개 중대 도합 증간된 연대 병력으로 제21연대를 포위했다. 제21연대는 중공군 일부를 물리쳤으나 주저항선의 전반이 붕괴하여 중공군은 이틀 만에 수도고지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이 하사는 1953년 6월 14일 철수 도중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록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4판-6면-18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4-ㄲ-08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