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득(李晩得)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90742
  • 전몰일자 : 19530708

공훈사항

이만득 일병은 6․25전쟁이 발발하고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6월 6일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출생 일자 및 출생지 미상).
이만득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부대정비와 훈련을 마친 후 강원도 사창리로 이동해 1953년 1월 김화 동북지역의 금성전투에 참여했으며 4월부터 번개고지, 샛별고지, 무명고지 전투를 수행하였다. 북한군은 5월 13일부터 금성돌출부 정면의 전초진지에 대해 공격을 가해 왔으나 연대 장병들은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대부분의 공격을 격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초는 빼앗기고 말았다.
제26연대는 1953년 5월 14~16일에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47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그리고 5월 23~24일에 금성 서남쪽 4㎞ 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김화저격능선-금성 남쪽 회고개-교암산-지형능선-수도고지-949고지-833고지를 연하여 형성)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 결과 사단은 6월 하조리에서 회고개(117번 및 119번 도로 축선)까지 주저항선에 제1연대와 제26연대를 배치하고 제1기갑연대를 예비로 확보할 수 있었다.
이만득 일병이 소속된 연대가 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는 서로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시체가 부패하면서 전투 현장에는 발을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후 큰 전투 없이 수색정찰, 매복, 적진 교란작전 등을 지속하였다. 이만득 일병은 1953년 7월 6일 매복작전 중에 적 정찰대의 기습을 받아 중상을 입고 제5이동외과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의료진들의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7월 8일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0면-21775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8-ㅋ-09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