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득(李晩得)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9290741
  • 전몰일자 : 19530625

공훈사항

이만득 상병은 경상북도 선산시 고아읍에서 1928년 1월 27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상병은 1953년 1월 17일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상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은 1953년 2월경 강원도 김화군 수도고지 일대에 주둔해 있었다. 수도고지는 1952년 9월 중 국군 수도사단과 중공군 간에 여러 차례 공방전이 벌어졌던 해발 600m의 고지이다. 제8사단은 수도고지 일대에서 북한군의 공격 징후를 1953년 초순부터 간파해 전초진지 경계를 엄중히 하는 동시에 수색 정찰 활동을 증가시키고 예비대를 전방으로 이동시켰다.
북한군은 1953년 5월 13일 제8사단의 주저항선 및 후방에 걸쳐 포격을 가하며 공격을 개시했다. 이 공격으로 제8사단은 적군의 측방 화력과 일제사격에 의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해 594고지와 647고지를 빼앗겼다. 이에 제8사단은 1953년 5월 27일 고지를 되찾고자 지형적 악조건과 병력의 손실을 무릅쓰고 512고지와 647고지에 공격을 감행하였다.
제8사단은 연막탄과 함께 전차 2대가 출현하였을 때 수류탄과 치열한 사격전으로 북한군을 격퇴하고 패주 시켰으나 제8사단 또한 북한군의 포격으로 통신망이 두절되었다. 다음날 병력을 증강하여 재침입하는 적군을 저지하고자 했지만 적군이 국군 진내까지 침입하여 피아간에 치열한 교전이 전개되었고 끊임없이 증강되는 적으로 인해 철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전열을 가다듬은 제8사단은 1953년 6월 12일부터 6월 21일까지 금성 동남방지구 전투에 참여했으며, 당시 제8사단은 수도고지의 주저항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후 고지 재탈환을 위해 역습을 개시해 일부 고지를 탈환했지만, 적군의 계속되는 증원과 무차별적인 포격에 역습이 좌절되었다.
하지만 적군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아군은 여러 번의 교전과 진내전을 효과적으로 펼침으로써 1953년 6월 21일 제8사단이 690고지를 탈환한 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고지를 재탈환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 상병은 1953년 6월 25일 적 1개 대대와 교전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득 상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8판-3판-26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5-ㄱ-08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