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두(李滿斗)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3435
  • 전몰일자 : 19500725

공훈사항

이만두 일병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창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소백산맥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7월 중순 경상남도 지역에서 신병 모집을 하고 있던 제27연대에 입대했다.
한편,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중순 각 편성관구사령부 예하에서 무기와 장비 보충이 없는 상태에서 신편(신병 모집) 중이던 연대들을 7월 16일부로 신병교육대로 개칭했다. 이때 제27연대는 제9교육대로 개칭되었다. 신병교육을 위해 7월 11일 제25교육연대가 창설되었으나, 7월 17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 제7교육대로 개칭되었다. 제9교육대는 부산에서 신병 교육 준비를 했다.
이 일병이 입대할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소백산맥 선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조기에 부산을 점령하고 한반도를 석권하고자 가용 전력을 총동원하여 국군과 유엔군의 방어진지를 돌파하는 한편, 아군 후방지역에 정찰대를 투입하여 후방교란을 기도했다. 전선이 남하함에 따라 부산 지역에 대한 북한군 정찰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더욱 극심해졌다. 당시 미군의 지원물자가 대부분 부산항을 통해서 들어오고 있었고, 부산에는 각종 지원부대와 시설 등이 밀집되어 있어 적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신병훈련소 또한 적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경남편성관구사령부는 교육 중인 신병을 포함하여 후방의 지원부대들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게릴라들의 활동에 대응했다. 7월 25일 부대 인근에 적 게릴라가 출몰하자 이 일병과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이 일병은 적 게릴라를 찾아 앞장서서 수색을 하다 적들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두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3판-2면-15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0-ㅍ-06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