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동(李萬同)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2703728
  • 전몰일자 : 19501013

공훈사항

이만동 일등중사는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1949년 10월 중순, 강원도 춘천의 제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연대는 제6사단에 예속되어 화천-춘천 축선 방어를 담당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인 공격을 했을 때, 이만동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곧바로 춘천 북방의 전방지역 방어지역에 투입되었다.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함으로써 6월 27일까지 적 부대의 춘천 점령을 저지했다. 제7연대는 북한군의 북한군의 계속된 공격으로 피해가 증가하자 6월 27일에 춘천에서 철수하여 이후 7월 한 달 동안 원주-충주-문경-점촌 –함창 일대에서 지연전을 수행했다.
이만동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8월 3일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북한군의 8월 공세와 9월 공세'를 격퇴했다. 결국 북한군들은 공격기세가 점점 약화되었고, 9월 12일부터는 공세를 취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일제히 반격작전을 개시했다. 완강히 저항하던 북한군이 9월 21일부터는 퇴각하기 시작하자, 이만동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추격작전을 실시하여 9월 22일부터 함창을 거쳐 충주 방향으로 진격하여 9월 29일에는 충주를 탈환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10월 4일에 장병들과 함께 춘천에 도착하여 춘천 시내를 감제할 수 있는 춘천 남쪽의 수리봉과 652고지를 점령했다. 10월 5일, 그는 연대 장병들과 함께 차량 편으로 춘천을 출발해 38도선을 돌파했다. 이후 화천을 거쳐 김화 – 신고산–성천 방향으로 진격하여 10월 13일에는 평양 동북방의 성천을 공격했다. 연대 장병들은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북한군 잔적들을 격멸했다. 이날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동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4면-125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1-ㄷ-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