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덕(李萬德)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365007
  • 전몰일자 : 19520105

공훈사항

이만덕 이등중사는 1927년 8월 26일에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정부수립 후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49년 6월경 육군 군악학교에 입대했다. 이만덕 이등중사 입대할 당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국군이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모든 것이 불비한 상황에서도 그는 최선을 다해 복무함으로써 군악대의 초석을 놓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편, 육군군악학교는 1949년 5월 1일 육군본부 직할로 서울에서 창설되었다. 동년 12월 22일 육군군악학교는 육군군악대로 개칭되었다가, 1950년 6월 10일 다시 육군군악학교로 재개칭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육군군악학교는 경기도 안양-충남 온양-전북 전주-경남 진주를 거쳐 7월 20일 부산으로 이동했다. 8월 20일 육군군악학교는 육군군악대로 다시 개칭되었다. 국군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을 함에 따라 육군군악대는 10월 10일 부산에서 서울로 이동했다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남하하자 12월 27일 다시 부산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1951년 4월 16일 다시 육군군악대를 육군군악학교로 개칭하여 군악병들을 교육하여 일선 부대에 보충했다. 이만덕 이등중사는 군악병 교육에 전념하는 한편, 후방지역에서의 주요 행사 시에 군악 지원에 앞장섰다.
부산 지역에서의 북한군 유격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은 유엔군이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북으로 진격하는 시기에도 그치질 않았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남하하자 더욱 활발해졌다. 당시 미군의 지원물자가 대부분 부산항을 통해서 들어오고 있었고, 부산에는 각종 지원부대와 시설 등이 밀집되어 있어 적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52년 1월 5일 군악대가 주둔해 있는 인근지역에 적 게릴라들이 출현했고, 이만덕 이등중사와 군악대 부대원들은 악기 대신 총을 들고 출동했다. 적 게릴라와 군악대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고, 이 전투에서 이만덕 이등중사는 대원들을 통제하며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덕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37묘역-2판-1949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7-ㄲ-030)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