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노(李萬魯)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24923
  • 전몰일자 : 19530105

공훈사항

이만노 하사는 전라북도 김제군 광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2년 4월 30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의 신 캔자스선(화천저수지-펀치볼-향로봉-간성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7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양구군 백석산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1951년 7월 10일 최초로 개최되었고,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연대는 큰 전투 없이 진지보강을 하면서 수색정찰, 매복, 교란작전을 지속했다. 공산군 측의 개성폭격설로 인해 8월 하순 일시 중단되었던 휴전회담이 1951년 10월 25일 재개되었다. 공산군 측은 회담의 주도권을 잡아보려는 시도로 전 전선에 걸쳐 국부적인 제한공격을 취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에서 격렬한 전투 양상으로 급변했다.
사단은 1952년 2월 중순 1,090고지 부근에서 적과 일진일퇴의 격전을 치른 후 전선의 교착 속에서 소규모 병력으로서 수색 및 정찰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10월 6일 중공군 제202사단이 1,090고지에 대해 공격을 가했고, 사단은 14일까지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친 끝에 이 고지를 지켜냈다(제3차 크리스마스고지전투). 사단은 11월 15일 미 제25사단에 현 전선을 인계한 후 양구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병행했다.
사단은 11월 하순 다시 전선에 투입되었고, 이후 큰 전투 없이 수색정찰, 매복, 적진 교란작전 등을 지속했다. 이 하사는 1953년 1월 5일 적진 교란작전 중에 적과 조우하자, 분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노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4-ㄹ-04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