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낙(李晩落)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171521
  • 전몰일자 : 19501201

공훈사항

이만낙 상병은 1929년 12월 10일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있을 때인 1950년 9월 하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만낙 상병은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 상병이 소속된 사단은 선산-상주-보은을 거쳐 미원으로 진출하면서 낙동강 전선에서 소백산맥의 험한 준령을 따라 북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패잔병들을 추격하여 그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소탕하였으며 10월 7일 이동을 개시하여 안성-서울을 거쳐 10월 10일에는 임진강 북안의 고랑포로 진출하였다. 이 상병과 장병들은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 동안 탄막사격과 근접항공지원의 엄호하에 공격작전을 펼쳤으나 견고하게 구축한 방어진지에서 자동화기와 소화기로 무장한 중공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적 진지 돌파에 실패하였다.
11월 1일 운산 동쪽의 상장동 진지를 지키고 있던 이만낙 상병과 연대병력은 밤 10시부터 밀어닥친 중공 제116사단의 집중공격을 받고 1시간 동안에 걸친 격전을 전개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끝내 진지가 돌파되어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이 상병과 연대는 적의 포위망을 탈출하기 위하여 4일까지 치열한 혈전을 펼쳤다. 이후 청천강을 도하하여 안주에 집결하여 부대정비에 주력하게 되었다. 재정비를 완료한 이 상병과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 병참선의 요충인 태천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후 이만낙 상병과 장병들은 11월 24일 적 병참선의 요충인 태천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어 11월 28일 이 상병과 장병들은 태천 외곽까지 진출하였으나 중공군의 공격에 밀려 박천 북쪽의 중막동-용산동 선을 점령하였고, 다음날(29일) 박천-용산동 일대를 고수하기 위하여 총력을 다 하였으나 계속적으로 증원부대를 투입하는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단은 축차적인 지연전을 펼치면서 박천 남쪽의 동이동으로 철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로지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만낙 상병은 1950년 12월 1일 평양 부근에서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낙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2-ㄷ-07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