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길(李萬吉)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6325186
  • 전몰일자 : 19510210

공훈사항

이만길 하사는 1931년 8월 12일 서울시 중구 인현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50년 1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만길 하사는 문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북한군 제3사단이 1950년 7월 4일 새벽 공격을 개시, 금곡리 부근으로 밀어붙이고 풍덕천-수원 도로를 따라 남진하자 이 하사와 장병들은 이들을 일제사격으로 격퇴하기도 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공격으로 방어선이 돌파되고 결국 7월 4일 평택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8월 초부터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 고수에 큰 수훈을 세웠다. 9월 6일 가산을 점령한 북한군 제13사단과 제1사단이 다부동 남쪽 도로를 차단하고 대구간 도로를 감제하는 570고지를 장악하였다.
이만길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조국 통일의 꿈을 안고 임진강-토산-신계-수안-상원 방향으로 진격을 계속하여 10월 19일 평양에 최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그와 연대 장병들이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하였던 중공군의 기습공격이 시작되면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였다. 파평산에서 철수한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서울을 포기하고 평택까지 철수하였다.
1951년 1월 5일 안성 북쪽에 배치된 이만길 하사와 연대병력은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개전초기와 ‘1.4후퇴’로 두 번씩이나 서울 사수에 실패한 불명예를 씻기 위해 심기일전하여 불퇴전의 정신력 배양, 교육훈련, 장비보충에 주력하였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1월 말 유엔군과 함께 반격을 시작하였다. 수원과 관악산을 거쳐 2월 10일 한강 남쪽에 도달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임하였다.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만길 하사는 1951년 2월 10일 서울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길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3-ㅊ-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