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길(李萬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20296
  • 전몰일자 : 19510315

공훈사항

이만길 일병은 경상북도 영일군 동해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으로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던 1950년 10월 하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1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만길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2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을 향해 두 차례에 걸친 총공세를 펼쳤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고 38도선으로 철수했다. 당시 제6사단은 덕천-곡산-시변리-고랑포 지역으로 철수하여 12월 11일경에 동두천 북방의 전곡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제7연대는 한탄강 남쪽 마차산에, 제19연대는 백의리 일대의 종현산에 배치하고, 제2연대는 예비로 동두천에 집결했다.
제6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중공군의 총공세를 맞아 적에게 최대한 타격을 가했으나,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적들이 사단의 후방지역으로 침투하여 동두천 부근을 공격하면서 전세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이에 사단은 전방연대가 고립될 것을 우려하여 철수를 명령했다.
이만길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제2연대가 엄호하는 가운데 방어진지로부터 철수하여 이날 야간에 창동으로 집결했다. 이후 경기도 광주의 한강 남안에 진지를 점령했다가 1월 6일에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후 군단에서 울프하운드 및 썬드볼트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사단은 차후작전을 위한 부대조정에 의해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중공군은 2월 11일에 9개 사단을 홍천-횡성 축선에 집중하여 어느 정도 돌파구를 확장하였으나, 전투지속 능력의 제한으로 5일 만에 실패로 끝났다. 이에 군단은 2월 21일부터 바로 반격을 했다. 이만길 일병이 소속된 제6사단은 군단의 조공으로 횡성 좌전방을 탈취하여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고, 이후 계속 공격하여 3월 5일에 공격하여 용문산(1157고지)을 탈취하고, 3월 13일에 홍천강까지 진출했다. 계속 공격하여 3월 15일에 춘천 서남쪽 6km인 의암리와 가평을 향해 진출했다. 그는 3월 15일 의암리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던 중에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3-ㄹ-05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