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길(李万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106707
  • 전몰일자 : 19510211

공훈사항

이만길 일병은 1927년 5월 22일에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면에서 출생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정부수립 준비로 혼란스러웠던 1948년 6월 1일, 경기도 양주의 제1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제6여단이 1949년 5월 12일부로 사단으로 승격될 때, 그는 제1연대에서 제6사단 수색대로 전속되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에 전 전선에서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이에 이만길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사단으로 보고했다. 이후 제6사단은 춘천-홍천 북방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3일간 저지하고 횡성-원주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6월 30일에 원주-충주-문경-함창 축선에서 7월 한 달 동안 지연전을 수행했고, 8월과 9월에는 낙동강방어선에서 두 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부터 낙동강 선에서부터 반격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제6사단은 10월 5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하였고, 10월 23일에 희천을 점령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10월 24일부터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개시했고, 11월 24일부터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후방이 차단당함으로써 큰 피해를 받고, 38도선으로 철수했다. 당시 제6사단은 초산까지 진격했으나, 결국은 철수하여 12월 11일에 동두천 북방에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만길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항상 적진으로 투입되어 적정을 파악하여 사단에 보고함으로써 사단 작전에 기여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목표로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펼쳤다. 이에 제6사단은 방어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다음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인접 부대들이 돌파되어 측후방이 노출됨으로써 진지에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1월 6일에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그리고 2월 1일에 방어배치 조정에 의거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얼마 후 중공군은 2월 11일에 횡성 북방에서 대규모 공세(일명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이 시기에 이만길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정 수집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에 발각되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7판-5면-26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3-ㄲ-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