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근(李萬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5395
  • 전몰일자 : 19510304

공훈사항

이만근 일병은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 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0월 하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육군직할 제3887부대에 배치되었다.
(*전사자 명부에 제3887부대는 고유명칭 확인이 불가능하므로 입대부터 전사 당시까지 6·25전쟁의 전반적인 경과 위주로 기술)
이만근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후퇴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하던 중 불법 참전한 중공군의 강력한 공세에 밀려 38도선으로 철수하게 되면서 서부지역은 12월 2일에 평양 철수를 시작으로 동부지역은 동해안 흥남항에서 해상 철수를 단행했다. 그 이후 철수한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반격작전을 준비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로 1월 3일 정부는 부산으로 천도하였고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 남쪽으로 철수를 개시하여 1월 5일에는 국군 제1, 3군단이 원주-삼척 선으로, 1월 6일에 서부전선의 美 제1, 9군단 평택-장호원 선을 점령했다. 1월 8일부터 국군과 유엔군은 평택-삼척을 잇는 선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면서 공방전을 전개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서서히 반격작전으로 전환할 준비를 하던 중 중서부전선으로 지향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맞이했다. 그러나 2월 11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격퇴하고 2월 21일부터 반격(일명 '킬러작전')으로 전환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대대적인 반격작전으로 3월 말에는 다시 38도선 일대를 회복했다.
이만근 일병은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만근 일병은 1951년 3월 4일 충주-삼척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중 중공군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근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5-ㅂ-067)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