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규(二萬揆)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K1120598
  • 전몰일자 : 19520721

공훈사항

이만규 하사는 경상남도 창원군 진북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초,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2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만규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때인 10월 중순, 미 제2사단은 지리산 일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작전임무를 국군 제3군단에 인계하고 북상하여 순천-개천 도로를 확보하고 구장동으로 진출했다. 유엔군이 11월 24일에 2차 총공세을 했을 때, 사단은 중공군의 기습으로 군우리 일대에서 큰 피해를 입고 38도선으로 철수하여 원주 부근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1950년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신정공세’ 시에 원주 동남쪽 고지에서 1월 6일부터 10일간 고수하여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중공군들은 북쪽으로 퇴각했다.
미 제2사단은 2월 11일 야간에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 시에 지평리-회성을 잇는 선에 2월 15일까지 적의 진출을 저지했고, 이로써 중공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고 퇴각했다. 이에 유엔군은 2월 21일부터 원주-횡성-홍천-춘천 방향으로 반격하여 4월 9일까지 화천저수지를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또한 사단은 5월 16일 개시된 중공군의 5월 공세 시에 벙커고지(800고지)에서 중공군으로부터 3면에 공격을 받았으나 격퇴했다. 이후 5월 24일부터 반격하여 5월 말에 인제를 점령하고 6월 중순에 펀치볼 일대를 확보했다. 이후 유엔군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예하 부대에 공세행동을 지시했다. 이에 사단은 8월 18일에 피의능선(983고지)를 탈취하고, 10월 초순에 가칠봉과 단장의능선(931고지 및 851고지)을 확보하고, 나아가 백석산을 확보했다.
이후 전선의 소강상태는 1952년까지 계속되었다. 미 제2사단은 7월 17일에 미 제45사단으로부터 천덕산 일대의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이곳에서는 중공군과 소규모 전투가 자주 발생했는데, 이만규 하사가 소속된 제23연대는 7월 21일에 중공군의 공격으로 시작된 전투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중공군을 격퇴했다. 이날 그는 전투 중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90-ㅊ-09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