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규(李万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6302
  • 전몰일자 : 19501209

공훈사항

이만규 일병은 경상남도 합천군 적중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5월경 입대한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이 전개되었고 전쟁 초기 적군의 막강한 화력에 제8사단은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했다.
이후 북한군은 본래 8월 15일까지 대구를 점령할 것을 목표로 총전력을 이용해 진격해왔다. 하지만 아군의 분전으로 이에 성공하지 못하자 연장된 보급로로 인한 지원 부진과 사기 저하까지 더해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반면 아군은 제8사단이 의성지구 전투에서 1950년 8월 7일부터 무려 13일간 지연전을 성공적으로 펼침으로써 반격을 위한 준비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제8사단은 1950년 9월경 낙동강 방어선에서 영천지구 전투를 실시한 후 9월 15일에 시행된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총반격작전을 실시하여 10월 8일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 작전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의 불법 개입으로 38선까지 철수하였다. 유엔군사령부는 중공군의 제1차 공세가 끝나고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중공군이 또다시 조직적인 공격을 가해오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시키는 계획을 수립해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단행했다.
그 중 제8사단은 형제봉-관리 전투에 참가하여 대규모의 중공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진지의 일부를 잃고 맹산 북쪽의 소가래봉으로 탈출했다. 탈출을 완료한 제8사단은 매재령의 차단 진지를 돌파한 후 북창을 경유해 가창으로 철수하기에 이른다. 이때 맹산이 위협받게 되어 제8사단은 측방으로부터 침투하는 중공군을 저지하기 위해 지연전을 펼쳤다. 그 결과 제8사단은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삼동에서 38도선을 향해 철수를 했고 율리, 수안, 신계, 시변리를 경유하여 토산을 향하여 진격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1월 27일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또 한 번의 방어 전투를 실시했다. 중공군은 제126사단을 동부 산악지대로 우회시켜 맹산 동북쪽 애창천 계곡, 즉 사단의 배후로 침투시켰다. 하지만 수색 정찰로 이를 확인한 제8사단은 연대의 애창 방어진지를 우회하여 맹산에 집결한 중공군과 교전하였고 그 결과 중공군과 제8사단 모두 일부 병력이 분산되었다. 이후 맹산이 위협을 받자, 제8사단은 영원 지역에서 철수하여 측방에서 침투하는 중공군을 저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0년 12월 9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규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0판-1면-17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0-ㅌ-01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