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규(이만규)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5102645
  • 전몰일자 : 19501128

공훈사항

이만규 이등중사는 1927년 11월 17일에 경기도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6월 15일, 서울 용산의 제1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4월 19일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다.
북한군이 6월 25일 새벽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이만규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9연대 본대는 원주에서 기차로 청량리를 거쳐 26일 새벽 5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이후 연대는 춘천 방면의 제7연대와 홍천 방면의 제2연대를 증원하여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6월 30일 오후에 원주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7월 한 달 동안 충주-조령-함창 축선에서 지연전을 실시하고, 8월 1일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양곡동을 잇는 고지군을 점령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8월 15일에 신녕 북방의 고지군을 점령하여 북한군의 8월과 9월 공세를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낙동강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제6사단은 9월 23일부터 패주하는 북한군 제8사단을 추격하여 함창-문경-충주-원주-춘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10월 6일에 38선을 돌파하여 김화-성천-순천-개천을 거쳐 10월 20일에 평안북도 희천에 도착했다.
이만규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10월 24일부터 개시되는 유엔군의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 시에 희천에서 압록강 변의 벽동 방향으로 공격했다. 반면 중공군은 은밀히 적유령 산맥 일대에 숨어 있다가 국군과 유엔군의 측후방을 기습적으로 공격했다. 이에 후방이 차단된 장병들은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포위망을 돌파하며 큰 피해를 받고 11월 1일에 청천강 선의 개천으로 집결했다. 이후 사단은 11월 14일에 영원-덕천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11월 24일에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다. 이번에도 중공군은 아군의 공격 다음 날인 11월 25일에 기습공격으로 아군의 후방을 또 차단했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공격을 멈추고 11월 26일부터 38도선으로 철수를 단행했다. 이만규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덕천-성천-곡산 방향으로 철수하는데, 11월 28일에 곡산 일대에서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이날 그는 분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규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16-ㄲ-01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