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구(李萬九)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804780
  • 전몰일자 : 19500819

공훈사항

이만구 일등중사는 1929년 3월 6일 강원도 원주군 호저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1월 10일 제6여단 제8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수도경비사령부 제18연대로 전속되었다. 이 일등중사는 제18연대 장병들과 함께 1949년 9월부터 1950년 1월까지 옹진지구전투사령부에 파견되어 옹진반도의 38도선 상에 위치한 은파산 일대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8연대(-)는 동일 오후 5시부로 동두천 축선을 방어하고 있던 제7사단에 배속되었다. 연대는 덕정 서북쪽의 용암리 일대에서 이 지역에 투입된 북한군 제4사단과 제203전차연대 제3대대와 일전을 벌였다. 그러나 포천 축선에 투입된 적에 의해 의정부가 함락되어 퇴로가 차단됨으로써 연대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연대는 고양을 거쳐 28일 밤 행주나루터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김포로 철수했다. 연대는 6월 29부터 7월 3일까지 김포지구전투사령부에 소속되어 김포비행장-오류동-영등포 일대에서 혈전을 벌이면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이어 연대는 7월 3~4일 안양 저지선의 덕안리 부근 전투에서 격전을 치렀다.
7월 5일 제18연대는 제1, 제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연대는 7월 10일 진천전투, 12~13일 청주 북방의 미호천전투, 그리고 14일~16일 남일면 성무봉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7월 23일부터 연대는 영주, 길안-청송 방어선에서 북한군 제12사단과 격전을 치르면서 적들의 남진을 8월 6일까지 지연했다.
그런데 북한군 제12사단이 국군이 배치되어 있지 않은 산악지대를 통과해 8월 10일에는 영일군 기계까지 침투함으로써 제1군단의 방어선에 큰 돌파구가 형성되었다. 이에 제1군단은 8월 10일 제8사단에 제18연대를 일시적으로 배속했고, 연대는 사단의 역습에 가담하여 8월 14일 적의 후방을 차단하고 뒤에서 공격을 가하여 18일 기계를 탈환하고 적을 비학산 방향으로 패퇴시켰다. 이 전투에서 이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공격하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8월 19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구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유해(장병3묘역-301판-2243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3-ㅈ-09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