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만구(이만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255075
  • 전몰일자 : 19530715

공훈사항

이만구 일병은 1931년 11월 6일에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대근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11월 7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11사단 직할부대인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이만구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2월 하순, 제11사단은 거진-건봉령-건봉산-향로봉을 잇는 방어선을 점령하고 방어진지 보강과 교육훈련, 그리고 수색작전 활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가기 전인 1952년 1월에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실시한 후 3월 30일에 건봉령-건봉산 일대의 방어지역을 다시 담당했다. 이후 이만구 일병이 소속된 수색대는 추후 적의 침공에 대비하여 적진으로 수시로 침투하여 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집중했다.
제11사단은 1953년 6월 10일에 동해안의 방어진지를 제21사단에 인계하고, 화천 일대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이는 대규모 중공군이 화천 북쪽에서 심상치 않은 공세행동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은 휴전을 얼마 앞두지 않은 7월 13일 야간에 국군 제6사단이 담당하고 있던 중동부전선의 금성돌출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했다. 이에 제6사단이 주파령에서 적근산을 연하는 미주리선으로 철수할 때, 제11사단은 7월 14일에 주파리-적근동으로 진출하여 제6사단의 측방을 엄호했다.
제11사단은 군단으로부터 적근산-삼현지구에 대한 반격임무를 부여 받고, 7월 15일을 기해 반격하여 602고지와 금성천 만곡부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함으로써 백암산 정면으로 침입한 중공군의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하여 더는 중공군의 진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만구 일병이 소속된 수색중대는 반격 첫날인 7월 15일에 적 후방으로 침투하여 적 지휘소에 타격을 가함으로써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만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21-ㅈ-09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