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린환(李麟煥)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28931
  • 전몰일자 : 19520714

공훈사항

이린환 하사는 1926년 12월 16일에 경상남도 진양군(現 진주시) 사봉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7월 17일,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린환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1951년 8월에 접어들면서 美 제10군단은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북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9월 4일부터 10월 14일까지 40여 일간 강원도 양구 일대 가칠봉 전투에서, 가칠봉 북쪽에 위치한 1,211고지를 3번이나 점령했다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끝내는 동 고지를 적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사단은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내며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확보하여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사단은 이 전선을 10월 20일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직할로 전환되어 양양으로 이동했다.
이후 사단은 1월 13일 제1군단에 배속되어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고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제9사단으로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제5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사단의 주저항선에는 좌측 전방에 제36연대, 우측 전방에 이린환 하사가 소속된 제35연대를 배치하고 제27연대를 예비로 수동리 일대에 집결했다. 351고지 전초진지 방어를 담당한 제35연대는 주저항선에 제2대대만을 배치하고 전초진지에 제1, 3대대를 배치하여 전초진지의 방어력을 강화했다.
마침내 북한군은 7월 10일 오후 10시에 대규모 공격준비사격을 개시한 후 대거 침공을 개시하여 351고지 전초진지의 일부가 돌파되고 말았다. 그러나 제35, 27연대가 3일간 교대로 역습을 실시하여 제35연대가 7월 13일 야간에 同 고지를 탈환했다. 이린환 하사는 복무기간 중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351고지를 역습 성공 후 분대원을 통제하며 재편성 중 7월 14일 적 포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린환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47901, 128340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장병1묘역-143판-2709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4-ㄷ-06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