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린택(이린택)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7200599
  • 전몰일자 : 19500626

공훈사항

이린택 이등중사는 출생 기록이 없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11월 하순경 입대하여, 서울특별시 용산에 위치한 헌병학교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同 학교 조교요원으로 배치되었다. 이린택 이등중사는 야전헌병 양성을 위해 전념을 다해 교육훈련을 실시했다. 당시 헌병의 임무는 후방지역에서의 질서유지와 적 오열을 색출하는 것이었다.
한편 육군직할 헌병사령부는 美 군정 시절인 1947년 3월 15일에 군감대로 설치하여 운용하다가 1948년 3월 11일에 군기사령부(조선경비대)로 창설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48년 12월 15일에 병과 명칭을 헌병으로 변경했다. 이후 1949년 1월 16일에 서울 용산에서 헌병학교가 창설되어 운영되다가 6·25전쟁 발발 후 1950년 7월 13일 임시 폐교되었다.
이린택 이등중사는 헌병학교 조교로 복무 중 1950년 6월 25일에 38도선 전방에서 북한군이 전면적인 공격을 실시했다는 정보를 접했다. 헌병학교 장병들은 즉각 전방지역으로 투입될 준비를 했고, 육본 명령에 의거 포천-의정부 축선으로 투입되어 제7사단 헌병대로 편성되었다. 포천지역은 제7사단 제9연대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38도선 경비임무를 수행하던 제2대대는 이미 와해되어 무질서하게 철수하고 있었다. 연대본부와 제1·제3대대는 의정부 북방 4km 지점인 금오리 일대에서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가 천주산 일대의 주방어진지를 점령했다.
북한군 제3사단과 제4사단, 제105전차여단(-)은 30여분에 걸친 포병사격으로 전방의 경계진지를 유린하고 전차와 보병으로 거침없이 공격했다. 북한군 선두 전차 8대는 6월 25일 아침부터 아군의 보병화력이나 105mm 포병사격에도 끄덕하지 않고 포천 방향으로 직행했다. 적 전차는 큰 저항 없이 오전 11시에 포천을 점령했다.
이어서 1시간 뒤에 적 보병부대가 아군부대가 배치된 천주산-가랑산을 포병사격과 함께 공격했다. 제9연대 장병들은 많은 피해를 입고 무질서하게 철수 중이었다. 이린택 이등중사가 소속된 헌병학교는 무질서하게 철수하는 장병들에게 질서를 유지하게 하고 후방집결지로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적들은 본대가 공격하기에 앞서 적 정찰대들이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 습격했다. 이린택 이등중사는 부대원과 함께 헌병대에 침투한 적 정찰대와 대적하여 용감하게 싸웠으나, 6월 26일 교전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린택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7면-355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2-ㅅ-05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